[장지원 사람향기] 아버지의 보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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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사람향기] 아버지의 보호자
  • 장지원 기자
  • 승인 2020.12.10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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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커피가 어울리는 아침. 원고 쓰느라 한껏 분위기를 잡고, 리듬이 끊기지 않게 긴장하고 있었다. 이때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원고 쓸 때는 옆에서 누가 무엇을 하든, 전화벨이 울리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쓰는 일에만 집중한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계속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시선이 머물러서 받게 되었다. 수화기를 드니 “아빤데, 좀 나와야겠다. 사고가 나서….” 조금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어디서 사고가 났으며 받은 건지 받힌 건지 여쭤보니 집 근처에서 사고가 난 것이다.

나는 사고 지점까지 정신없이 내달렸다. 비는 그칠 기미가 없고 아버지는 눈물을 머금은 채 차안에 앉아 계셨다. 얼굴을 살펴보니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반은 넋이 나간 상태였고, 눈 밑은 찢어져서 피가 나고 있었다. 많이 놀래셨나보다. 휴지를 찾아서 상처를 닦아드리고, 혹시 증인이 될 사람이 있을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자동차가 인도 가까이 정차되어 있어서, 어떻게 사고가 났기에 표시도 안하고 인도 쪽으로 정차시킨 건지 여쭈니 상황 설명을 하신다.

3차선에서 4차선으로 차선을 바꿔서 들어온 상태였고, 그대로 30미터가량 진행 중이었는데 트럭이 느닷없이 와서 뒤를 받았고, 받힌 상태에서 차량이 30미터 정도 밀린 상태로 정차되어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받은 차량 운전자가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우긴다고 했다.

길 건너 자동차 정비공장에 들어가서 표시할 만한 페인트를 빌려다가 사고 지점을 표시하고 있는데, 상대방의 동료들이 세 명이나 몰려와 조금 황당하였다. 사고 났을 당시 목격한 것도 아닌데 왜들 왈가왈부하는 건지 말이다.

표시를 하고나서 보험회사에 사고 접수를 해놓고, 상대가 잘못이 없다고 하여 112에 신고했다. 조금 있으니 경찰이 세 분 왔는데, 특별한 것도 없이 쌍방의 이름과 연락처, 차량 번호만 적더니 경찰서 조사계로 가라는 것이다. 경찰서 가면 된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래도 일단 불렀을 때는 서로의 의견 충돌이 있으니 사고 지점을 보고 상황 판단을 해달라는 거였는데 헛수고였다.

조사계로 가니 상대방 운전자는 일찍 와서 진술서를 쓰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잘못이 없다고 한다. 서로의 사고 경위를 종이에 그려가면서 설명을 듣던 담당자는 장난감 자동차로 예측하여 상황을 재연하였다. 그러더니 차량을 보자고 밖으로 나갔다. 담당자는 요리조리 살피더니 쌍방의 과실이란다. 하지만 아버지가 조금 더 잘못이 있다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차선변경을 했기 때문이란다. 나는 따졌다. 차선을 바꿔서 일단 들어오면 자기 차선이라고 생각을 하지 어떻게 몇 미터 갔는지 생각을 하고 사고를 내겠냐고.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모르는 상황이다. 일단 차선을 바꿔 들어와도 100여 미터 진행하여 차량이 차선의 중앙으로 진행했을 때는 뒤차의 잘못이지만, 30미터 정도 진행한 것은 입증할 증거가 없기에 그리된다는 것이다. 입증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인데, 조사관도 순전히 억측이었다. 그렇게 따진다면 사고자가 안 될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는 것이다. 억울했다. 아버지의 난감한 표정. 운전을 하신 이래로 사고를 낸 적이 없는 분이기에 얼굴은 울상이었다.

마침 보험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가 전화 받으러 나간 사이 나는 상대방 운전자에게 한마디 했다. 젊은 사람이 양보를 하지 과속하여 올 건 뭐있었냐고, 양심적으로 따지면 당신의 잘못이라고 했고, 일흔 되신 노인 얼굴 좀 보라고 한마디 하였다. 놀래서 우는 거 보고도 잘못이 없다고 하겠냐고. 그랬더니 담당 경찰도 그제야 아버지의 얼굴이 엉망인 것을 본 것이다. 안타깝지만 현행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말뿐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경찰서를 나와서는 정비공장으로 가신다고 했다. 나는 집에 가겠다고 근처에 내려 달라고 하니 혼자 가기 싫다고 하면서 공장에 함께 가자고 하신다. 가는 내내 주변의 차량도 살피면서 놀란 가슴 진정시켜드리느라 수다도 떨고 잔소리도 했다. 공장에 도착해서 보험사 직원을 만났고 당시의 상황과 서류 작성을 해서 넘겼다. 차를 맡기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함께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생각해보니 나는 여태까지도 아버지가 나의 보호자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어보니 아버지가 나를 보호자로 의지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종일 따라다니면서 보호자로서 일처리를 했으니까.

기억을 더듬어보니 지금까지 어디를 가시던지 나를 데리고 가려 했던 일들이 생각났다. 돋보기 쓰기 싫으니 함께 가자고 하면서 내 손을 잡아끌던 일들이 많았음을 이번 일을 계기로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나는 조금 귀찮은 생각이 들면 혼자 가시라고 했었는데, 이제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일은 아버지께 좀 더 신경 써야겠다고 느끼게 하는 사건이었다.

‘아빠, 다음에 딸하고 데이트 하고 싶으면 그냥 데이트 하자고 하세요. 사고 내서 나오라고 하지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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