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원 사람향기] 가을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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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사람향기] 가을춤
  • 장지원 기자
  • 승인 2020.11.07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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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스산함으로 다가오는 깊은 가을이다. 훤칠한 은행나무는 수려한 외모를 가진 탓에 많은 연인들이 수줍어 떨며 품으로 안겨든다. 그렇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은행나무는 둥그렇게 팔을 뻗어 등을 감싸고 토닥인다. 그러는 사이 노란 잎이 애처로이 떨어진다. 나도 나무의 품에 안길까 말까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바람에 흩날리는 노란 잎들이 내 앞에서 애잔한 자태로 춤을 춘다. 마치 나비가 춤을 추듯이 우아하게 날갯짓도 한다. 너울너울 손짓하는 노란 날개를 외면할 수 없었다. 감전이라도 된 듯 짜릿함이 느껴져 나무의 품에 덥석 안기고 말았다. 그의 품 안에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온통 노란 나비의 군무(群舞)가 일대장관이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무와 입 맞추며 춤을 춘다. 나무의 황홀함에 취해 열정적으로 추었더니 눈앞이 노랗기까지 하다. 내가 기절한 것인지 날리는 은행잎 때문인지 춤을 보러가기도 전에 한껏 흥이 난 나는 그 기분을 고스란히 담고 걸음을 뗐다.

가을답게 주변에는 국화가 그득했고, 무대 주변에서는 젊은이들의 현란한 춤사위에 모두들 매료되어 있었다. 스피커에서 들리는 소리가 가슴을 울리는 떨림을 전해 주고, 나도 어느새 춤꾼만큼은 못해도 발을 구르며 어깨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가벼운 춤을 추고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려는지 무용수들이 현란한 색상의 의상과 장신구를 하고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주황색과 초록색의 의상을 입은 그들은 화려한 의상만큼 미모가 뛰어나서 넋을 놓고 보았다.

춤은 푼잡 지역의 전통춤이었다. 영화에서처럼 화려한 춤은 아니었으나 소박한 멋이 있었다. 자신들의 땅. 푼잡의 문화와 삶을 자랑스럽게 표현한 춤으로 따라 하기 쉬운 리듬과 동작이었다. 논에서 일할 때 추는 춤, 결혼, 축제 등이 주제였는데, 리듬감이 있어서인지 모인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나서 춤을 추니 무용수들도 흥이 나서 세 차례나 같은 방식으로 군중들을 무대로 이끌었다. 그러니 모두들 일어나서 추고, 무대까지 올라가서 춘다. 나도 흥이 잔뜩 물들은 탓에 춤을 춰보고 싶었지만 용기도 없었고, 외국인들처럼 배우지 못한 탓에 사진만 열심히 찍었다. 역시 외국인들은 춤 이라는 것에 익숙해서인지 푼잡 무용수들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려서 춤을 추었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무색하리만치 흥겨운 춤마당이 벌어지는 가을이다.

공연장 아래로 내려오면 억새를 이용해서 가을 잔치를 하는 곳이 있다. 거리 한가운데 억새와 감나무가 어우러져서 싸늘한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인도 무용수가 긴 머리채를 꺼두르면서 추던 춤이 연상되었다. 그 사이에서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속의 사람들과 추억을 만드는 사람들. 그들이 모일수록 하얀 머리를 한 억새는 한들한들 몸을 움직이며 유혹을 한다. 길게 줄지어 선 억새들은 사람들을 반기는지 너울너울 머리채를 날렸다. 하얗고 긴 머리는 황새의 날개 같았다. 커다란 날갯짓처럼 느껴지는 가을 오후. 도심 한가운데 마련된 가을 춤. 주말 하루 동안을 춤을 추며 보냈다. 낙엽의 춤과 사람의 춤과 억새의 춤까지. 춤사위를 너울거리며 가을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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