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원 사람향기] 정(情)의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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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사람향기] 정(情)의 떡
  • 장지원 기자
  • 승인 2020.10.05 1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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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끝나갈 무렵이었고 봄이 오는 그때쯤이다.

산 아래는 초록 싹들이 눈 속을 비집고 나오느라 빡빡 깎은 머리 닮은 풍경이었고, 산 위로는 3월이라 할 수 없는 눈이 쌓여있는 두 계절이 맞닿아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겨울과 봄을 오가는 기분이 들게 하는 날씨에 낙산사에 들렸다.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면서 길로 보이는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니다보니 내리막이 넓은 길로 들어섰다. 길의 중간쯤에는 담벼락에 등을 지고 기대어 앉아 있는 할머니가 있었다. 옆구리에는 작은 투명 상자가 놓여있고, 나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 떡을 먹어보라고 하면서 손짓을 했다.

쌀쌀한 날씨 탓에 다니는 사람이 없음을 알기에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많은 떡을 어찌 다 팔 수 있을까? 하면서 말이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동화 속에 나오는 성냥팔이 소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추운 날씨에 성냥을 팔아야 하는 소녀. 동화처럼 할머니도 쌀쌀한 날씨에 떡을 팔아야 집에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에서 파는 음식을 거의 사서 먹지 않는 나는 떡을 먹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은 투명 상자에는 잎에 쌓인 떡이 가득했다. 양손으로 자그마한 이파리를 떼어내니 찰기가 보이는 하얀 알이 보인다. 하얀 속만 입술에 갖다 대니 매끈한 것이 입속으로 쏘옥- 들어간다. 몇 차례 씹을 것도 없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처음 먹어 본 떡 맛에 희한한 떡이라 생각하면서 순식간에 여러 개를 먹고 한 봉지 가득 사들고 돌아온 기억이 있다.

싸늘한 날씨에 맛본 떡은 나의 배고픔과 추위를 감싸주는 따스함이었다. 아무도 안 다니는 그 넓은 길에서 만난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치 요술쟁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후로 떡집 앞을 지나가면 맛나게 먹었던 그 떡을 찾아보곤 했다.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떡이다.

내가 그 떡을 본지 거의 16년 만에 다시 보았다. 동료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조금 늦은 저녁 시간에 음식점을 나와서 무리 지어 깔깔거리면서 지나가고 있을 때 등 뒤에서 " 찹쌀 떠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 시절에 듣던 그 "찹쌀 떠억~메밀묵~" 하던 그 정겨운 소리.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소리에 뒤돌아보았다.

종로 한복판에서 들은 그 소리가 어찌나 반갑던지. 뒤돌아보니 작고 많이 마른 체격의 남성이 커다란 상자를 어깨에 메고 뛰어온다. 커다란 떡 상자를 내려놓고 떡을 꺼내서 보여준다. 하나는 찹쌀떡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찾던 그 떡이었다.

애교 많은 그 청년은 우리에게 떡을 사라고 열심히 애교도 섞어가면서 설명을 했다. 그 모습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 청년은 누가 봐도 삶의 고단함을 안고 지내왔음을 한눈에 읽을 수 있었다. 모습은 피곤해 보였고 떡을 먹어보라는 애절한 설명에 매정하게 안 살 수 없었다.

찹쌀떡은 네모반듯한 정사각형 상자에 담겨 있었다. 카스텔라 가루 같은데 분홍 물을 들인 고물 옷을 입고 나란히 나란히 있는 모습이 꼬마병정 같았다. 찰떡을 하나 집어서 맛을 보니 적당히 달큼한 것이 맛있었다.

다음으로 애타게 찾던 그 떡을 집었다. 작은 직사각형 상자에 두 줄로 가지런히 담긴 모습이 여인의 치맛자락 끝으로 보이는 하얀 버선발 같았다. 둥그스름한 작은 잎 사이로 살짝 보이는 떡의 속살. 눈으로 보기만 해도 보드라워 보인다. 마치 새가 낳은 알을 몰래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다.

하나를 집어서 잎을 살그머니 떼어 백옥같이 하얀 살을 한입에 넣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오래전에 먹은 그 맛 그대로였다. 세월이 많이 지나면 맛도 변할 텐데 망개떡은 나의 추억 속의 맛 그대로였다.

떡 포장 상자에는 "헐레벌떡" 이라고 쓰여 있는데, 맛이 너무 좋아서 글자 그대로 숨 쉴 사이도 없이 계속 집어 먹을 수밖에 없는 떡이다. 새우깡 광고처럼 자꾸자꾸 손이 가는 맛이다. 그 떡이 바로 망개떡이다.

한 상자를 전부 먹으려니 아까운 마음에 조금 남겨 두었다. 저녁에 남긴 것을 찾는데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는지 물으니 망개떡을 전자레인지에 데웠는데 하얀 떡살이 다 녹아버렸단다. 그 증거를 내게 보여주는데 그 몰골이 처참했다. 떡의 모양은 없어지고 흰 설탕물이 응고된 것처럼 보였다.

찹쌀가루를 쪄서 치대어 만든 떡인데 왜 녹았을까. 형체도 없이 녹아서 물처럼 되어버린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으나 추억 속의 나의 망개떡은 수줍음이 많은 사랑스러운 떡으로 남아있다.

오래전 낙산사에서 처음 맛보았을 때는 떡을 파는 할머니의 심신의 고단함이 걱정되어 사먹고, 종로에서는 떡을 파는 이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사 먹었다. 이번에 먹은 망개떡에는 떡을 파는 사람을 위로하고자 하는 내 마음에 하나가 보태어졌다. 바로 정(情)이다. 내게 망개떡은 마음을 보여주는 "情의 떡"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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