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원 사람향기] 정든 집을 떠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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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사람향기] 정든 집을 떠나면서
  • 장지원 기자
  • 승인 2020.03.16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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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고 있는 집은 일출과 일몰이 훤하게 보이는 매우 밝은 집이다. 내 방에서는 뜨는 해를 볼 수 있고, 거실에서는 붉게 물든 지는 해가 산허리에 걸리는 모양을 볼 수 있는 천국 같은 집이다. 고층에 자리한 덕분에 앞, 뒤로 가리는 것 하나 없이 시야가 시원하다. 이 곳에 사는 동안 여름에도 에어컨을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다. 앞 베란다 창문과 부엌의 창문을 열면, 열어둔 방문이 저절로 쾅 하고 닫힐 만큼 맞바람이 성큼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해, 달, 별에 값을 매겼다.

값을 매긴 이유는 이곳에 이사 오기 전 주택에 살 때의 일이다. 집 앞에 두 채가 헐리면서 연립주택이 들어섰고, 그 바람에 1층에 사는 우리는 동굴 속처럼 컴컴해졌다. 그 후에 아파트로 이사 와서는 밝은 빛을 보면서 해도, 달도, 별도, 맘껏 볼 수 있기 때문에 값을 매긴 것이다.

공기 좋고, 자연을 맘껏 누리고, 빛을 보면서 사는 대신에 전에 살던 집에서 나오던 생활비가 없다고 어머니는 이렇게 푸념하신다.

“아이고, 저 해는 백만 원이고, 저 달도 백만 원이고, 별도 그 만큼이다.”라고. 그래도 나는 이 집이 좋고, 천 년 만 년 누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쥐구멍에 쨍 하고 볕이 든다는 속담처럼 밝은 햇살 맘껏 마시는 것도 그렇거니와, 글쓰기라는 새로운 삶도 시작한 곳이었기에 비싼 값을 치른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정든 집을 떠나려하니 정든 사람과 이별 할 때가 생각난다. 매일 전화하고, 이메일도 매일 주고받았지만, 그것도 아쉬워서 매일 만나기까지 했다. 책과 영화를 좋아하는 우리는 함께 다니면서 보고 난 후에 그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그밖에 일 이야기,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와 각자의 고민도 나눌 만큼 각별한 인연이었다.

처음 만남을 가졌을 때도 암이라는 병을 앓고 계셨는데 꿋꿋하게 버티셨고, 늘 밝음과 희망을 갖고 계셨다. 병의 시작에도 내가 곁에 있었고, 그 병이 끝날 때도 곁에 있었다. 오래도록 보고 싶은 사람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했다.

정든 집을 떠나려하니 그때와 같은 마음이다.

처음의 낯섦을 벗을 만 하니까 또 다시…. 항상 그렇듯이 이번에 이사하는 목적도 아들을 위해서다. 부모님은 다 털어봐야 겨우 남매를 두셨는데도 무조건적인 아들 사랑 병이 깊은 신 탓에 당신에게 자식은 아들뿐 이라고 하면서 모든 것을 아들에게만 맞춘다.

요즘은 아픈 속을 달래고자 처음 이곳에 자리할 때 헤매던 장소부터 차근차근 밟아오고 있다. 오늘은 한 정거장 위로 올라가서 거꾸로 내려왔다. 공원을 돌면서 보도블록 깔린 길, 나무로 만든 길, 그 외 자전거 도로까지 골목을 샅샅이 걸어보면서 아파트 뒤편의 오솔길로 들어왔다. 키 작은 소나무가 즐비하고 그 아래 이름 모를 작은 꽃들, 누가 가꾸는지 모르는 작은 텃밭과 평상이 놓여있다. 그 자리는 어르신들이 모여서 담소도 나누고 그림공부도(?) 하는 곳이다. 언짢게 귀가하는 날도 이곳을 지나오면 박장대소 하는 소리에 얼었던 마음도 녹아내리는 좋은 길목이었다.

길을 헤매고 다니면서 내 마음의 길도 어지간히 헤집고 다녔나보다. 입구인지 출구인지 모르고 드나든 기분이 드니 말이다. 혼자서 다녀보니 평소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들렸기 때문이다.

길 위에는 웃는 자, 우는 자, 떠나보내는 자, 나처럼 가슴에 상처 입어 아픈 이들이 있었고, 그들 역시 혼자서 길 위를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진명스님의 글이 생각났다.

“한정되고 유한한 공간에 집을 크게 짓고

어리석은 부자로 살기보다 무한정의 공간에 영원한 마음의 집을

튼튼히 지을 줄 아는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현실은 그 어리석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너도나도 바동거리지 않는가. 생각해보면 눈에 보이는 집을 내게는 지어주지 않았다고 내 속을 긁고 있었다. 그보다 나를 세워줄 기둥을 짓는 것이 더 중요했음을 알기까지 수없이 많은 갈래 길을 헤집고 다녀야 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글 쓰는 내게 중요한 것은 마음 안에 튼튼하게 집을 짓는 것이 우선순위였다. 어떻게 해야 내가 하고자 하는 글쓰기를 더 잘 할 수 있을지 ‘글쓰기 집’을 튼튼하게 지을 생각만 해야겠다. 정든 집을 떠나는 이때에 시기적절하게 진명스님의 글이 눈에 띄었던 것도 내게 가르침을 주려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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