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원 사람향기] 그냥 있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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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사람향기] 그냥 있주게
  • 장지원 기자
  • 승인 2020.02.25 0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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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녁, 제주도에 살고 있는 친척 할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왔다. 공항 가서 생선을 찾아다 먹으라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공항에서 가슴이 울렁울렁 하였다. 생선이 얼마나 큰지 승용차 뒷좌석에 꽉 맞는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였다. 게다가 상자 밖으로 무언가 삐죽이 나와 있었다. 나온 부분은 황색 테이프로 꽁꽁 감겨 있었는데, 집에 와서 풀어보니 그것이 생선의 꼬리였다. 내 생애 처음 받아보는 가장 큰 생선이었다. 꼬리를 자르면 빨리 상할까봐 온전하게 보내시느라 상자에 구멍을 내신 거다. 할아버지다운 발상이다.

할아버지는 외가로 먼 인척이지만 잦은 왕래로 가까이 지내는 분이다.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기고, 무뚝뚝하지만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걸쭉한 커피를 좋아하고, 한 배의 선장이며, 아직도 싱글이다. 그래서 가끔 놀리기도 한다.‘총각 할아버지’라고. 지금껏 혼자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기는 하다.

할아버지께서 군복무 시절 애인이 있었다. 휴가 나오면 애인을 만나러 가야했는데, 당시 교통비도 부족하였고, 달리 가 볼 곳도 마땅치 않았는데 그 무렵 내가 태어나 할아버지는 나를 보러 오셨던 거다. 그 사이 할아버지 애인은 결혼을 해버렸다. 그 후로 할아버지는 연애도 않고 첫사랑만 바라보고 계신다.

요즘 세상에 이렇듯 한 여성을 지독히 사랑하고, 지금은 남의 여자가 되었지만 그 여인이 불행해져서 돌아온다 해도 받아 준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 역시 만나보고 싶다.

몇 해 전 할아버지는 갑상선 수술과 허리디스크 치료를 위해서 서울에 오신 일이 있었다. 물론 가까이서 돌봐줄 사람이 없었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나를 돌봐주셨고, 조금의 미안한 마음도 있기에 당연히 내가 해야 할일이었다.

입원 후 이틀이 지나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할아버지는 아직도 그 여인을 사랑하고 있으며,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 돌아온다 해도 받아들일 거라고 하셨다. 너무도 놀라게 하는 말씀이었다. 그것이 사랑인지 집착인지 할아버지는 그 여인 이야기를 남기셨다.

여러 시간이 지난 후 회복실에서 입원실로 오신 할아버지는 마술에 걸린 듯 아이가 되어 있었다. 투정 부리는 모양이 꼭 7살 소년을 보는 듯했다. 병원 밥이 맛이 없다고 드시지 않았고 덕분에 나는 입원 기간 동안 좋아하시는 죽과 장조림 반찬을 만들어 하루 2번 왕복을 하는 수고를 더해야했다. 할아버지의 유일한 즐거움은 식후에 커피를 마시는 습관인데, 수술 후 커피는 삼가라고 했기에 운동 삼아 1층 로비까지 왕복을 하면 커피나 코코아를 드리겠다고 유혹(?)을 했었다. 그렇게 커피와 코코아를 두고 밀고 당기기를 한 달여 동안 지내고 퇴원을 했다.

혼자 계시면서 몸을 돌보지 않아 여기저기 고장 난 곳이 많았다. 통원 치료를 다녀오시면 이내 지쳤고, 식은땀이 비 오듯 하면서 곤히 주무셨다. 매일 치료받으면서 보낸 시간이 한 석 달은 지난 듯하다. 할아버지는 집이 걱정되신 모양인지 서둘러서 제주도로 가셨고, 할아버지가 안 계신 자리는 쓸쓸하기만 했다.

할아버지가 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근황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어도 전화하고 편지도 썼다. 전화 통화는 늘 나하고만 하신다. 집에 전화를 하셔도 어머니하고 하시는 말씀은“지원이 바꾸라”이 한마디뿐이다. 조금 괴짜이시다.

하루는 전화를 하는데 메시지 남기라는 녹음기만 돌아갔다. 기계랑 짧은 통화를 하고 나면 씁쓸하다. 할아버지와 통화 내용 중 우리를 웃기게 만드는 고정 스토리가 있다.

“할아버지 뭐하고 계세요?”

“나아? 그냥 있쭈게.”느릿한 말투로 대답하신다. 제주도 말로 그냥 있다는 뜻이다. 다시 여쭈면

“똑바로 누우면 천장이 보이고, 옆으로 누우면 벽이 보이고, 그러고 있주게. 너는 왜 그러고 있나아. 연애도 안하고.”하신다. 그러면 나도 할아버지처럼 그냥 있다고 하면서 하하하 웃음으로 대신한다.

며칠 후 다시 전화를 했을 때 또 안 받으신다. 그래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니 바다에서 고기를 낚고 계시다고 나중에 전화하라며 끊는다. 그 날 할아버지는 나에게 보내줄 생선을 잡으러 바다에 나갔던 것이다. 이렇듯 할아버지와 나의 보이지 않는 사랑은 무뚝뚝함 속에 흐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보고 아예 제주도 가서 살라고 핀잔을 주신다. 할아버지와 나만을 위해 가사를 바꿔 만든 동요도 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중략)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라멘타인. 철없는 아이 홀로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이제는 이 동요를 부를 일이 없다. 지금 할아버지는 사랑도 이루지 못하고, 나와 동요도 끝까지 부르지 못하고 영영 어디 가실 준비를 하고 계신다.

간암 말기다. 그래서 위독해지면 중환자실로 옮겼다가 숨이 돌아오면 6인 실로 다시 옮기고, 이렇게 반복을 하면서 가실 준비를 한다. 사랑에 대해 얼마나 속을 태웠으면 이런 병에 걸리셨을지….

동요처럼 나와 첫사랑을 두고 영영 가시려한다. 할아버지와 나만의‘그냥 있주게’를 이제는 누구와 이야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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