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원 사람향기] 오심지차(吾心之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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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사람향기] 오심지차(吾心之茶)
  • 장지원 기자
  • 승인 2020.02.1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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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커피 귀신’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하루에 보통 열잔 가량을 마시는데 맛을 알아서라기보다는 그저 습관적이다. 눈뜨자마자 마시기 시작해서 잠들 때까지, 맛도 모르고 즐기는 나는 가끔 차(茶)맛을 아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茶라고 해야 고작 현미녹차만 마셔보았던지라 그냥 모른다는 대답을 할 수밖에.

나에게 질문을 하신 분은 오랫동안 예(禮)와 다도를 익힌 선생님이다. 그래서인지 몸놀림이 가벼운 듯하면서도 절제가 있고, 고운 말씨며 단아한 표정을 가지고 계신다. 톡톡 튀는 나로서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몸가짐이라 하겠다.

선생님은 내게 차 맛을 알게 해주고 싶다며 초대해 주셨다. 다도를 오래 하셔서 그 댁은 사방이 다구(차를 달여 마실 때 쓰는 도구)들로 그득했다. 평소에 본적이 없는 탓에 어린아이처럼 '이건 뭐예요? 그리고 저것은요' 라고하면서 궁금증을 풀어놓는다.

내가 앉은 자리에는 차수건이며, 잔대(찻잔 받침), 찻사발 등이 정리되어 있었는데 그 분위기만으로도 나를 숙연하게 했다. 차 만드는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니 그것도 단순하지가 않았다. 차 한 잔 마시는 데에도 이렇게 예를 차려야한다는 것을 생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차가 우려지는 동안 권해주신 다식을 맛보았다. 차를 마실 때 곁들이는 간식이라는데 그간 맛이 없다고 기피했던 나의 편견이 그 자리에서 깨지고 말았다. 엄지손가락 크기의 작은 것이지만, 가격을 매긴다면 한 개에 천 원 정도는 할 거란다. 이렇게 비싸게 치인 간식인데 시중에 내놓는다면 제 값을 받겠냐며 미소 지으신다.

내놓으신 다식은 대가답게 종류도 다양했다. 단호박, 콩, 홍삼, 딸기, 파인애플을 주셨는데, 그것들은 화학조미료가 전혀 첨가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맛을 지니고 있었다. 희한한 것은 그 다식 맛에 따라서 차 맛도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차를 한 모금 입에 담으니 맛을 물으신다. 쌉싸래하고 미끄러우며, 부드럽게 넘어간다고 했다. 다음으로 입에 머금고 혀로 굴려보라고 한다. 아마도 차를 느끼는 방법인 듯한데 초심자이다 보니 잘되지 않았다.

이 날 나는 차 마시는 법도와 차 만드는 과정을 배웠고 또 찻상을 앞에 놓고 서로 담소를 나누는 교분의 예법도 배웠다. 이제는 소박하지만 많은 얘깃거리를 마음갈피에 담을 수도 있게 되었다.

예로부터 다도에는 건강, 사교, 의례, 수양, 예능 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데, 그 중에서 수양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지금 내가 마시듯이 끓는 물을 그냥 부어서 마시는 것은 빨리 해치우려는 마음이 있을 뿐이지만, 다도는 기다림의 미학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도 정신을 보면 일본은“화경청적(和敬淸寂)”으로 표현된다. 화는 마음의 온화함을, 경은 상대를 공경하는 것을, 청은 마음이 아름답고 고요함을, 적은 만족함을 아는 마음을 의미한다. 우리 다도의 대표정신은“중정(中正)”이다. 차를 우릴 때 지켜야할 것으로 건강과 정신의 중요함을 강조하며 이른 말이란다.

우리나라 다도의 대가로 칭송되는 이목 선생이 차에 대한 예찬으로 “다부(茶賦)”를 지었는데, 그 중 넷째 잔을 마실 때엔 “웅장하고 호방한 기개가 일어난다”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나는 불현듯이 기(氣)의 의미를 찾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찻상 앞에 마주 앉아 서로 호방한 기개를 느끼다보면 지금의 이 힘든 상황들도 너끈히 이겨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엉뚱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맞이한 ‘찻자리’ 에서“오심지차(吾心之茶)”라는 의미도 배웠다. 차를 마시는 동안은 차와 내 마음이 하나 되어 사무사(思無邪)의 경지에 이른다는, 사뭇 차원 높은 뜻도 터득하게 되었다. 차나무가 추운 겨울을 이겨내어 봄에 새싹을 틔우듯이 다도정신과 내 마음이 하나 되어 삶의 활기를 줄기차게 뿜어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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