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원 사람향기] 사라진 빈대, 늘어나는 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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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사람향기] 사라진 빈대, 늘어나는 빈대
  • 장지원 기자
  • 승인 2020.02.01 2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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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있을까? 나는 한 번도 본적이 없어서 생김새도 모르겠다. 아는 척을 해보면 “스님이 고기 맛을 알면 절에 빈대가 안 남는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소갈머리가 빈대 옆구리처럼 좁다.”는 속담 정도이다. 빈대를 모르는 내가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빈대는 이, 벼룩과 함께 가난의 대명사였다. 집안, 새둥지, 박쥐가 사는 동굴에서 살기도 하고 가축에게서도 보인다. 빈대가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방안으로 들어오면 밤마다 사람을 괴롭힌단다. 물리지 않으려고 꾀를 낸 것이 콩잎을 뒤집어서 잠자리 주변에 펼쳐두고 잔다. 콩잎의 까칠한 표면 때문에 다니기 불편해서 깔아둔 날은 물리지 않고 잠을 청할 수 있다.

빈대가 피를 빨아먹지 못하니 영리한 해충인지 꾀를 낸다. 벽을 타고 천장으로 가서 먹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몸으로 직접 낙하하는 민첩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빈대가 있는가 하면 남에게 빌붙어서 공짜로 얻어먹는 것을 의미하는 말도 있다. 학창시절 이런 동기생이 있었다. 그는 밥 먹으러 가는 친구를 따라서 식당으로 갔고, 담배가 피고 싶을 때는 한 개비씩 얻어 피웠다. 그리고 비싼 미술용품을 빌려서 쓰고, 집에 갈 때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친구가 하교할 때 자신도 따라 나갔다. 흔히 말하는 인색한 친구였다. 빈대도 낯짝이 있다는데 하면서 구박을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얄밉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그가 보이면 다들 피해 다녔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그.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빈대와 빈대를 피하고 싶은 쪽. 양쪽 다 이해가 된다. 지금도 미술용품 중에는 수입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값도 비싼 편이다. 당시 마카지 한 장에 육백 원에서 팔백 원까지 하는 종이를 썼는데 한 장 망치면 그만큼의 돈을 버리는 셈이다. 단순히 종이만 버리면 다행이지만 그뿐이 아니다. 마카도 몇천 원씩 하기 때문에 망칠 경우 몇천 원의 돈을 버리는 셈이다. 가급적이면 자신의 것을 써야하는 이유도 되었다. 빌려 쓴다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거절을 잘 못하는 나는 그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내 것을 조금씩 나눠 썼다.

시대가 바뀌면서 빈대형이 무조건 빌붙어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고 알뜰함의 지름길로 바뀌었다. 그들의 생활하는 방식을 배워보자고 할 정도이다. 예를 들어서 남이 버린 물건도 쓸 만하면 주워다 쓰기. 공짜로 누릴 수 있는 공연은 즐긴다. 웬만하면 빌려 쓴다. 녹차와 커피 티백 버리지 말기. 형편에 맞게 쓰기. 전기 플러그 뽑기 등 많이 있다.

빈대라고해서 모든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무턱대고 미워만 했던 빈대. 이제는 거꾸로 빈대의 비법 전수에 나선 이들이 많다. 아끼는 것도 좋지만 너무 쥐어짜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아낀다고 있는 힘껏 비틀어봐야 무엇이 나오겠는가. 부서진 먼지정도겠지. 가장 어렵지만 가장 이상적인 ‘적당히’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빈대는 해충이지만 나름대로의 목표가 있어서 그렇게 악착(?)같이 벽을 타고 사람에게 달려든 것이 아닐까. 흔히 빌붙어 사는 빈대도 마찬가지다. 좋게 보면 자신의 목표가 있었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누구 하나 감싸지 않고 방치해두기만 했다면 지금 그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빈대는 주변에 피해를 주지만 목표의식을 갖고 행동한다는 점은 본받아야 할 것 같다. 생활이 풍족해지면서 해충 빈대와 빌붙어 사는 빈대형 인간도 보기 드물어 졌다. 반면에 빈대처럼 속 좁은 사람들은 늘어만 가는듯하다. 풍요속의 빈곤처럼 말이다.

부족했던 시절에는 서로 나눠 쓰는 여유가 있었지만, 여유로워진 지금은 자신만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얼마 전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로 큰 다툼이 있었는가하면, 순간을 못 참고 살인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크게 보면 폐수 몰래버리기, 환경은 뒷전인 무분별한 아파트 건설 등 많기도 하다. 자신에게 또는 자신이 거주하는 생활 주거지에 조금만 피해가 된다 싶으면 정색을 하고 막아선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들은 열린 자세로 결과를 기다리지 않는다. 남을 비판하고 질투하고 무리한 요구들을 하고 있다.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바쁘게 살아가다보니 넉넉한 마음도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문장을 쓸 때도 쉼표를 찍어서 한 박자 쉬고 가듯이 우리들도 삶에 쉼표를 찍고 숨을 쉬고 지나갔으면 좋겠다.

아일랜드 속담에 생각의 여유를 갖고 남에게 주는 시간을 가져라. 자신을 베푸는 시간을 가져라. 라는 말이 있다. 여유를 찾아 빈속을 통통하게 살찌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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