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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심판 앞둔 '제주판 살인의 추억'…재판부 선택은
제주 보육교사 살인 사건 유력 용의자 박모(49)씨. 사진=뉴시스 2018.05.16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는 2009년 발생한 어린이집 보육교사 살인 사건이 10년만에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실체적 진실을 향한 경찰의 끈질긴 노력에 재판부가 어떤 결과로 응답할 지 주목된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 재판장 정봉기 부장판사는 11일 오후 2시 지법 201호 법정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강간 등 살인)로 기소된 박모(50)씨의 선고 공판을 진행한다.

사건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2월8일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 인근 배수로에서 하의가 벗겨진 채 숨진 여성 사체가 발견됐다.

부검 결과 여성이 숨진 이유는 타살로 확인됐다. 당시 부검의는 시신의 체온이 외부온도보다 높고, 위장 속 음식물이 소화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사체 발견시간으로부터 24시간 이내에 여성이 숨졌다는 결론을 내놨다.

경찰의 판단은 달랐다. 여성의 휴대전화 신호가 같은 달 1일 새벽시간대에 사라지고, 다음날인 2일 여성의 차량이 제주시 이도2동 옛 제주세무서 인근 무료주차장에서 발견되는 등 피해자가 실종 당일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기 때문이다.

부검의와 경찰의 판단이 정면배치되자 수사에 혼선이 생겼다. 경찰의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은 확실한 알리바이로 경찰 수사망을 전부 피해갔다.

박씨는 경찰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던 인물이지만, 부검의의 사망 추정 시간과의 연관성이 없어 결국 용의선상에서 벗어났다.

경찰은 이후 3년간 광범위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2012년 6월 결국 수사본부를 해체하게 된다.

경찰은 여성이 숨진 시간을 정확히 특정하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고 판단했다.

용의자를 잡아야 했다. 다만 여성이 숨진 시간을 특정하는 일이 변수였다. 2016년 2월 신설된 제주경찰청 미제사건 수사팀은 수사에 가장 큰 혼선을 야기한 피해자의 사망 추정 시간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동물사체실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실험은 주효했다. 피해자가 사망한 장소에서 같은 조건 하에 치러진 동물사체실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월의 차가운 제주 날씨는 사체의 부패를 현저히 지연시켰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체의 온도는 주변온도보다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인 법의학 지식이다.

하지만 죽은 동물의 사체는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처음 며칠은 온도가 낮아졌지만, 어느 순간 주변온도보다 높아지는 현상을 보였다.

여러 마리의 돼지, 개 사체로 진행된 실험에서 유의미한 데이터가 나오자 피해자의 사망 추정 시간도 변경할 수 있을 정도의 확신이 생겼다.

동물사체실험을 통해 피해자가 실종 당일 살해됐을 것이라는 경찰의 추론이 법의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경찰은 다시 용의자의 뒤를 쫓을 수 있게 됐다.

경찰은 택시기사였던 박씨를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확신했다. 택시기사 5000여명을 전수 조사하고 운행기록을 분석한 결과 피해자를 태우고 운행한 사람이 박씨로 추정됐기 때문이다.

경찰은 또 피해자가 발견된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및 법영상분석연구소 등에 의뢰한 결과 당시 박씨의 택시 외에 해당 동선을 통과한 다른 택시는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박씨와 피해자 사이에 강한 접촉을 암시하는 미세섬유 증거도 보강했다. 추가로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경찰은 지난해 5월 박씨를 체포하게 된다.

그러나 거기까지 였다. 법원은 "동물사체실험 결과가 박씨의 범죄를 입증하는 증거가 될 수 없고, 피해자의 신체에서 발견된 미세섬유 조직이 유사하다는 의미일 뿐 동일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이유로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경찰은 포기하지 않았다. 피해자 착용 의류의 미세섬유 조직이 박씨의 차량에서 발견된 미세섬유와 매우 유사하다는 감정 결과 등 보강된 증거를 토대로 박씨를 재차 체포, 지난해 12월21일 구속영장을 발부받기에 이른 것이다.

택시기사였던 박씨는 지난 2009년 2월1일 오전 보육교사인 A(당시 27세·여)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제주시 애월읍의 한 농로 배수로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공소사실에서 경찰 수사기록 등을 통해 박씨가 당시 A씨와 접촉한 사실이 있고, 박씨의 택시가 당시 사건현장으로 이동한 흔적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지난달 27일 열린 1심 최종 변론에서  "법리적인 것은 잘모른다. 다만 이 사건에 연루돼 형사조사에 응하는 과정에서 나를 비롯한 가족 등 주변인들이 너무나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항변했다.

그는 "내가 체포돼 재판을 받는 동안 부모님이 주변의 시선을 피하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대목에서는 큰 한 숨을 몰아쉬며 잠시 울먹이기도 했다.

기억의 한계를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6개월 동안 갖혀 있으면서 예전 기억을 다시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면서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기억을 찾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괴롭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억울한 심정보다는 제대로 된 판결과 결정이 이뤄져서 앞으로 나와 우리 가족이 발뻗고 생활할 수 있는 (재판부의)판단이 나기를 기원한다"고 최종변론을 마쳤다.

CCTV 영상과 미세섬유 등 박씨를 향한 간접증거는 많이 있다. 그러나 간접 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선 전적으로 재판부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유죄를 입증하기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직접증거이다"며 "하지만 모든 정황 및 간접증거가 한 사람만을 향하고 있다면 역시 가치 있는 증거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형사소송법상 대원칙인 증거재판주의 실현과 실체적 진실 사이의 괴리를 채워주는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이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장영진 기자  yeounjun@newscub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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